2026년 2월 4일 수요일

“지원하되 간섭하지 마라” 그 원칙으로 돌아가야 할 때

기고—김병호 단장 극단 즐거운사람들

올해로 연극을 직업으로 삼고 살아온 지 40년이 됩니다. 그 세월이 더딘 듯했지만 지나고 보니 참 훌쩍 지나가고 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보다는 옛날이 더 나았다는 생각이 들어 참 아쉽습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지금이 더 좋고 다가올 미래가 더 기대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40년 연극 인생이 마주한 현실

자발적 의지로 선택한 연극이기에 설렘과 두려움의 순간들을 긴장된 숙고 속에 마주했습니다.

매 순간 선택과 책임을 다했고 그 결과 남다른 보람을 느꼈었습니다.

어렵고 고단했던 순간들이지만 지금보다 더 좋았다는 기억이 강하게 다가오면서 지금의 현실을 되짚어 봅니다.

극단에 입단해 동인제(同人制) 운영구조 속에서 약 40명의 협동한 결과는 실패조차도 다음을 기약하는 건강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기대되고 설레는 다음을 이끌 수 있는 힘이 우리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살아가는 참맛이 지금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 자체가 우여곡절이니 연극계야 오죽 했겠습니까?

그럼에도 그 곡절을 스스로 견디어 왔기에 오늘이 있는 것인데 이 오늘이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오히려 공공지원시스템 때문인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듯이 이참에 돌아보자는 차원에서 면밀하게 들여다보았습니다.

우리 모두 IMF 당시 전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 등 나라 구하기에 나섰던 일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때 모든 분야에서 대대적인 구조 조정이 진행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예술계에는 1단체 1건이라는 기준으로 제작지원금이 지원되기 시작했습니다.

문화예술진흥원이 있었으나 그 당시는 공연장과 미술관 박물관 등에서 관람료의 일부를 문화예술진흥기금이라는 명목으로 징수 대납하는 시대였습니다.

그 문화예술진흥기금은 해외공연을 가거나 국제 전시 등 특별한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예산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대도 하지 않았던 적잖은 예산이 무대 제작 지원금으로 지원되기 시작했습니다.

공모제로 지원되니 매년 단체 수는 늘어나고 급기야 단체에 사람은 없고 단체등록증만 있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이 기조는 다양한 지원시스템과 보조금 사업으로 우리 사회 전반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17개 광역단체와 약 120개의 기초지자체가 문화재단 또는 문화관광재단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생력 잃은 예술계, 공공지원의 역설

이제는 공공지원 없이는 창작활동 자체가 어렵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34년 차 전문예술단체도 신생 단체와 똑같은 출발 선상에서 공모사업 지원신청서를 제출하고 선정 여부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이제는 “애쓴 만큼 예측할 수 있는 범위에서 작은 보상이라도 이루어 지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었던 옛날이 차라리 더 좋았다”는 푸념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원이 좋다 나쁘다기보다 말 그대로 ‘일부 지원’이어야 하는데 모든 시장을 공공의 힘이 다 장악하고 있어, 민간단체 스스로 자생력을 가질 수 없는 현실이 이대로 그냥 좋은 것인가 면밀하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이렇게 문화예술계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공공지원에 길들여져, 현실을 거부할 힘조차 잃어버리고 지원 정책에 목을 매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 부족한 틈을 메워 보려 노력해도 시장은 이미 공공에 장악돼 있습니다. 민간단체 스스로 공연장을 대여해 생산성을 확보하기란 이미 불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모두를 지원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기에 공공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공공의 지원은 현장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꼼꼼히 살피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책임을 다했다는 논리만으로 역할을 다했다 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공공 예산의 온기가 실핏줄처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규정이나 법보다 양심의 규범이 살아나도록 해야 합니다.

‘나 살자’고 의심부터 하고 본다면 곤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원은 신뢰와 믿음 바탕 위에

안타깝게도 현재의 지원제도는 참여자를 예비 범법자로 가정하고 규제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신뢰와 믿음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마라”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 이후 문화예술 정책기조로 선언한 말입니다.

줄 때는 기꺼이 주라고 했습니다. 60살이 넘어서야 이 말이 뭔 말인지 알 듯합니다.

지원할 때는 믿고 지원해야 합니다. 규정이 어긋났을 때 책임을 물으면 됩니다. 최소한의 규정을 지키는 방식이 아니라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 최선의 반복이 건강한 신뢰의 토양을 만들어 줄 거라 확신합니다.

실무자의 소신 있는 집행이 누군가를 감동시킬 때 변화는 일어납니다. 싫은 소리를 들어줄 줄 아는 사회,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과 용서가 수용되는 사회, 누군가의 잘못이 구성원인 나의 책임은 아닌지 먼저 돌아보고 스스로를 추스르는 사회성과 공동체성이 회복돼야 합니다. 선순환 구조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산을 늘리기도 해야 하겠지만 공공 예산의 가치 있는 쓰임이 우리 사회 전반에 건강한 영향을 미칠 때 예산을 쓰는 이도, 수혜를 받는 관객도, 지원 기관도 일상의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서로를 신뢰하고 존중하는 시대로의 전환은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 충실할 때 가능해질 거라 믿습니다.

예술이 온전하게 사회적 역할을 하자면 독립적이고 자생적 여건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연극은 협동의 예술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연극을 함께할 사람을 그때그때 ‘조달’해서 협동이 가능한지 시험하는 꼴입니다.

연극···그래도 평생 바칠만한 일

실내 공연예술은 11월부터 새해 2월까지 겨울이 성수기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11월이면 사업을 종료하고 보고서를 써야 하는 시기가 돼버렸습니다. 또 새해 보조금(지원금)을 받기 위해 공모신청서를 작성하는 일로 분주합니다.

정작 활동은 공공 예산 집행 시기에 맞추어 4월부터나 시작됩니다.

평생을 바쳐온 연극이 이제 와 돌아보아도 해볼 만한 가치 있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이 가치 있는 일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는 공공도, 민간도, 시장도 다시금 짚어 보고 재편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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