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희 해설사,
지도에 없는 우리마을이야기
태릉갈비 유래에서
국수거리 생긴 배경까지

“경기 양주군에서 서울시로 편입될 당시(1963)에는 서쪽에 공덕리, 동쪽에 능골이라는 큰 마을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태릉동으로 정했다가 공덕리 주민들의 반대가 있어 공덕리의 공자와 능골의 능자를 따서 공릉동으로 정했어요.”
이민희 공릉동꿈마을여행단 해설사(노원지역학연구소 연구위원)가 지난 20일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에서 ‘공릉동, 지도로는 보이지 않는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갖고 공릉동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설명했다.
이날 특강에서 이민희 해설사는 먼저 서울의 발달과정과 그 속에서 노원구가 서울로 편입된 과정, 공릉동의 유래 등을 소개했다.
이 해설사는 또 노원의 역사에 대해 고대부터 한강 연안에 위치한 국토의 요충지라며 방어와 생산활동에 필수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삼국시대에는 백제->고구려->백제->신라로 지배세력이 바뀌는 삼국의 격전지였다고 강조했다.
노원구는 1963년 처음 서울시 성북구에 편입됐으며 73년에는 도봉구에 포함됐다가 88년에 다시 분구되면서 노원구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공릉동은 조선 초기까지는 양주목 노원면이었다가 갑오개혁 때 양주군 노원면 공덕리, 안골, 무수동, 묘동리, 능골, 망우리면 묵동리 등을 포함했다.
이 해설사는 ‘태릉갈비’의 유래와 관련, 많이 알려진 ‘왕릉에 제사 뒤 남는 고기를 팔았다’는 설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60년대 이후 왕릉은 소풍 명소로 사랑받으며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마침 인근에 배 농장이 많아 배즙을 넣은 갈비가 맛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태릉갈비가 유명해졌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중랑천 골재를 이용해 벽돌을 만들던 인부들이 값싸게 먹을 수 있는 국수집들이 많아 형성된 ‘국수거리’, 태릉초등학교, 공릉중학교 울타리를 따라 선비나무라고 불리는 회화나무가 심어진 ‘인재의 거리’, 임금님이 태릉과 강릉에 참배할 때 이용했다는 ‘능행길’의 유래를 설명했다.
강봉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