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8일 수요일

“350년 유럽 커피의 기억···공릉동 문화로 만들고 싶어”

인터뷰—이승재 말베르크전시관 관장

도깨비시장 상인회가 있었던 자리가 깔끔하게 변신했다. 이곳에 커피 원두를 갈던 손잡이 달린 기계, ‘커피 그라인더’만으로 채워진 말베르크(Mahlwerk) 전시관이 들어섰다.

안마을신문이 지난 12일, 이 공간을 만든 이승재 전시관장을 만났다. ‘말베르크’는 독일어로 ‘분쇄기’ 혹은 ‘제분소’라는 뜻이다.

독일 유학시절 취미 삼아 수집

이승재 관장이 커피 그라인더를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독일 유학 시절이다. 1997년 독일로 건너가 약 20년을 체류하는 동안, 그는 자신이 살았던 루르 공업지대의 벼룩시장에서 우연히 그라인더를 접했다.

이승재 관장이 커피 그라인더 분쇄추를 생산한 레나츠 가문의 가계도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배경으로 보이는 방에는 이 회사에서 생산한 그라인드 시리즈 전체를 소장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지역이 커피 그라인더 생산의 중심지였어요. 대장간에서 쇠를 다루던 장인들이 생활용품으로 만들던 물건이 바로 그라인더였습니다.”

루르 공업지대는 석탄과 철강 산업이 발달한 곳. 이 지역의 기술은 자동차뿐 아니라 칼, 공구, 그리고 커피 그라인더 같은 생활용품으로 확장됐다.

“그라인더의 핵심은 커피를 가는 분쇄 추에요. 그거는 쇠로 만들 수밖에 없는데 그당시에는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아닙니다. 거기서 그라인더를 만들던 대장장이들이 나중에 그라인더 제조사로 발전하거든요.”

독일에 살았던 흔적을 이걸로 남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수집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만난 한 수집가의 집을 방문하면서 그의 시선이 바뀌었다.

“그 집 문을 여는 순간 깨달았습니다. 내가 모은 건 단순한 장식품이었고, 그분이 모은 건 생활의 역사였습니다.”

그라인더는 유럽 생활사의 기록

이 관장은 커피 그라인더를 “지난 350년 커피 대중화를 지켜본 목격자”라고 정의했다.

“커피는 소비 과정에서 원두를 생산하고 로스팅하고 브랜딩하지만 이 과정은 모두 대중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최종 그라인딩은 각 가정에서 이루어졌어요.”

유럽에서 커피는 16세기 말 전래됐고, 17세기부터 커피하우스 문화가 형성됐다. 이후 1900년대 초반에 이르러 커피는 완전히 대중화된다. 이 과정에서 그라인더는 모든 가정에 필수 도구로 자리 잡았다.

“유럽에는 집집마다 그라인더가 있었습니다. 단순한 도구를 넘어서 가문의 상징이 되기도 했고, 예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그라인더는 시대에 따라 형태와 기능이 변했다. 초기에는 쇠를 두드려 만든 수공예품이었지만, 이후 나무와 금속을 결합한 형태로 발전했고, 19세기 중반부터는 대량 생산이 시작됐다. 자동차 회사로 알려진 푸조 역시 그라인더를 생산하던 기업이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1939년에 만들어진 그라인더 중에는 탄피로 만든 것도 있습니다. 전쟁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커피 문화의 전환점과 기술의 변화

커피를 ‘내려 마시는’ 방식이 등장한 것은 생각보다 늦은 1908년이다. 그 이전에는 대부분 끓여 마셨다.

“아주 미세한 입자를 걸러낼 필터 기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끓여 마시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죠.”

이후 여과 필터가 개발되면서 커피 문화는 급격히 변화했고, 에스프레소와 다양한 추출 방식이 등장했다. 동시에 그라인더도 더 정밀한 분쇄를 위해 구조가 변화했다. 그러나 1950년대 전동 그라인더가 등장하면서 수동 그라인더의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지금 수동 그라인더는 성능 때문이 아니라 ‘경험’ 때문에 쓰는 겁니다. 커피를 만드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문화가 된 거죠.”

1800점 컬렉션, 그리고 공릉동으로

이승재 관장이 보유한 그라인더는 약 1,800점. 수집 과정에서 거래·교환된 것까지 포함하면 3,000점을 넘는다.

이 방대한 컬렉션은 처음에는 서울 중구에서 전시됐다.

“2019년부터 22년까지 중구에서 전시회를 열었어요. 코로나 시기에도 월 3천 명 이상이 방문할 정도로 호응을 얻었지만, 건물이 철거되는 바람에 전시가 중단됐어요.”

이후 노원구의 제안으로 공릉동 도깨비시장에 전시관이 들어섰다.

“공릉동은 경춘선숲길을 따라 다양한 카페가 밀집해 있기 때문에 그라인더 전시관이 있기에 최적의 장소입니다. 시장이라는 공간이 열악해 보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커피의 본래 성격과 맞다고 생각합니다. 커피는 누구나 마시는 음료여야 하거든요.”

현재 전시는 3년 계약으로 운영 중이다. 이후 지속 여부는 미정이다.

“공릉동에서 새로운 문화 만들고 싶다”

이승재 관장은 전시를 넘어 지역과 함께하는 문화 활동을 구상하고 있다.

“공릉동 주민들과 함께 ‘우리만의 그라인더’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기존 그라인더를 재해석하고, 그림을 그리고, 전시까지 이어지는 방식입니다.”

그는 커피를 매개로 지역 문화를 확장할 수 있다고 본다.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참여형 문화 콘텐츠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이 공간을 살아 있게 만드는 건 결국 주민입니다. 공릉동의 자랑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강봉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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