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수현 지리선생님의 그리스 여행(5)
7일차: 라브리오항- 미코노스섬, 8일차: 쿠사다시(에페소스) – 파트모스(밧모)섬
여행 7일차(7일). 이날부터 아테네에서 1시간 거리인 라브리오항을 출발, 미코노스, 에페소스, 파트모스, 로도스, 크레타, 산토리니 등 다섯 곳의 기항지를 거쳐 귀항하는 크루즈 투어로 전환했다.
배는 최대 1700명을 수용하는 중소형급이다. 세 끼 식사를 배에서 해결하고 오전과 오후 한 두 곳씩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여행은 진행됐다.
관광은 두세 시간 정도로 감칠맛 나게 진행되고 크루즈 안에서 일행들과 즐기는 기회도 충분하지 않아 그리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크루즈 상품은 성수기인 봄여름에만 운영한다고 하니 승무원들은 대부분 n잡러일 것 같다.

이날 오후 네 시쯤, 크루즈에서 작은 배로 갈아타고 미코노스에 입항하려 하는데 작은 사건이 벌어졌다.
아내 대신 대타로 긴급 동행한 둘째 딸이 긴급여권 사진과 실물 대조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다행히 30분 정도 걸려 수습됐다. 딸은 아부다비 공항에서 심야 환승 도중 화장실에다 여권을 두고 나왔다가 가까스로 탑승에 성공한 바 있어 조심을 다짐했다.
어느 인류의 선행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느려진 공간
미코노스 방문자들의 표정은 밝고 업소 주인의 안색은 안정돼 보였다. 서울 인사동의 행인이나 지하철 승객 표정을 떠올려 보면 지쳐 보이거나 무표정하던지, 아니면 스마트폰으로 서로를 외면하는 풍경 아닌가? 시간의 속도가 느려진 공간이다.

미코노스는 바로 남쪽에 있는 델로스섬이나 낙소스섬에 비해 역사적 유명세가 떨어지지만 아기자기한 소박함과 환상적인 해안 절경이 있어 여행객은 눈 호강을 누린다.
산토리니는 경관이 빼어난 반면 미코노스는 오랫동안 앉아 즐기기에 좋으니, 산토리니는 세계적이고 미코노스는 지역적인 관광지라고 할까.
아차 크루즈 저녁식사를 한다고 일찍 승선하는 실수를 범했다. 9시 막배를 탄 다른 이들은 맥주와 함께 미코노스의 석양과 낙조를 즐겼다는데.
고대 에페소스 거리

밤 11시에 미코노스를 출발한 배가 눈 떠보니 튀르키예 쿠사다시 항에 와 있다. 해안 절벽 위에서 우릴 내려다보는 아타튀르크(케말) 동상을 지나온 아침햇살이 반겨 맞이하는 듯하다.
버스로 30분 달려 도착한 에페소스 고대도시는 2600여 년 전엔 해안이었다고 한다. 나일강처럼 토사가 퇴적해 해안선이 후퇴하고 있다고 한다.
활기찬 처녀 여신 아르테미스(아데미)를 모셨다는 유명 신전은 그 당시에 세워졌다고 한다.
좌우에 대극장, 도서관, 체육관, 원형극장, 목욕탕 시설이 도열해 있는 고대 에페소스 거리를 지나며 신약성서 속 바울과 요한, 로마인 이야기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를 떠올렸다.
사도 바울과 이교도들이 예리하게 충돌했던 아르테미스 신전은 기둥 하나만 달랑 남았는데, 오현제로 꼽히는, 대로마 제국 영토를 확립한 하드리아누스는 곳곳에 자기 신전과 문을 세우면서 에페소스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곳에서 특별한 마음을 쏟으며 선교한 바울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를 이곳에서 모셨다는 사도요한은 각각 인류에게 에베소서와 요한복음을 남겨 주었다. 현대인은 그 책을 통해 믿음의 기초와 예수의 정체성을 배우고 있다,
요한 계시록의 현장


쿠사다시에서 파트모스까지의 항해 시간은 3시간 반. 파트모스는 면적은 노원구(35㎢)와 비숫한데 인구는 3천 명 정도란다.
버스가 요한 계시록을 쓴 묵시록 동굴과 성 요한 수도원까지 데려다 주니 그저 그렇던 상륙지 해안 풍경이 무척 예쁘다.
내부 촬영 금지된 굴 안에 들어가 요한이 머물던 자리, 머리를 기댔다고 전해지는 움푹 패인 바위와 손잡이를 볼 수 있었다.
성 요한 수도원에 걸려 있는 많은 이콘(icon)은 동방정교회의 성화다. 예배 대상은 아니고 신과 성인의 영광을 경외하는 차원이라고 한다.
비잔틴 이콘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신비를 시각화한 것이다.
기독교 신자들이 와보고 싶어 하는 곳이 바로 파트모스섬이다.
우리는 옷차림이나 마음 모두 엄숙하고 경건한 자세로 들어가라고 요구받았기에, 그 신비로움에 경의를 표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탄압으로 이곳에 유배 왔다가 동굴 속에서 계시록을 쓴 사도 요한에게도.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는 나의 일상 속 동굴은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