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8일 목요일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하지만 나는 ···

유수현 지리선생님의 그리스 여행(6)

9일차: 로도스섬, 10일차: 크레타섬-산토리니섬, 11일차: 아테네

시오노 나나미는 동로마제국의 멸망 과정을 그린 ‘로도스섬 공방전’으로도 모자라, 3부작 ‘십자군 이야기’를 집필했다. 그녀는 이 책에서 십자군의 폭력성을 지적하면서도 구호 기사단으로 출발한 성 요한 기사단의 행적은 그나마 온건하게 표현하고 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세례자 요한처럼 고난받는 자를 돌보는 사명을 상징 삼아 지었다고 한다.

성 요한 기사단 거리를 허박사님과 중세로 돌아간 기분으로 걸었다.

‘에게해의 눈물’ 품은 로도스 섬

9일차 오전, 바울이 잠시 기항했다는 로도스섬 남쪽의 린도스 아크로폴리스에 들렀다. 여기서 내려다본 전경은 별칭대로 ‘에게해의 눈물’같이 짙푸르다.

오후에는 로도스항의 기사단의 궁전과 거리를 역사 여행하는 기분으로 걸었다. 기사단이 14세기부터 200여 년간 중세 최대의 군사 요새를 만든 곳이 바로 로도스항이 있는 도시 전체다.

고대 7대 불사가의라고 불리는 헬리오스 거상의 상상도.
로도스항 지도.

항구 입구에는 커다란 두 사슴 상이 있었는데 고대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헬리오스(태양신) 청동상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되는 곳이었다.

일행 중 최고령자인 80세의 허 박사님은 두 번의 큰 수술을 받고도 지중해 태양 아래를 건강하게 주파하신다. 아침 운동이 그 비결인가?

마지막 날 나를 설레게 한 크레타와 산토리니, 크레타까지 13시간 걸렸지만 덜덜 떠는 케빈 침대는 처음으로 단잠을 선사해주었다.

유럽 최초의 문명 꽃피운 크레타

크레타는 4천 년 전 유럽에서 가장 먼저 문명을 꽃피운 땅이며 수많은 신화의 배경이 된 섬이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 100개 정도의 도시가 등장한다고 한다.

‘미케네 문명보다 수준이 앞섰다는 미노스 문명은 도대체 어떤 수준이었을까?’ 궁금해하면서 입도하다 박물관 가는 길에 이곳에서 복음을 전했다는 바울의 제자 성 디도 기념 교회를 찾아 사진을 찍었다.

크레타 중심도시인 이라클리온에 자리잡은 고고박물관은, 말 그대로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선사 유물 전시관이라는 명성답게 양과 질이 대단했다. 속으로 경탄의 ‘어메이징’을 외쳤다.

그리스 내륙의 미케네와 달리 미노스 문명은 여성의 지위가 높았다고 한다. 마지막 전시실에 프레스코 벽화 유물들만 모아 전시해 놓았는데 그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그림들이 보였다.

카잔카스키 묘비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고 새겨져 있다.

기원전 18세기의 1300여개 방 규모의 크노소스 궁전이 여기서 불과 5km 정도 거리란다. 시간이 웬수라 커다란 아쉬움을 남기고 두 대의 택시로 카잔차스키 묘비를 짧게 찾았다.

묘비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고 새겨져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쓴 영혼의 자서전에서 인생에서 중요한 건 책 지식 대신 자아와 부합하는 목적을 발견하고 그걸 체현하는 거라고 했다.

바로 이 점이 그가 생각한 자유가 아닐까?

이번 여행에서 난 죽음이라는 걸 두려워하게 됐다. 삶의 마지막 자리에서 뒤돌아보게 되는 감회를 상상하니, 기회를 더 달라고 조르고 싶은 심정을 버릴 수 없었다.

일행 중 한 분이 한강 작가의 책 ‘빛과 실’을 묘비 앞에 내려놓는다.

큰 강이 없는 에게해의 색은 매혹적

유기물을 운반해 주는 큰 강이 유입되지 않는 에게해는 그야말로 맑고도 매혹적인 색이다. 그 대가로 어류는 풍부하지 않아 수산업이 활발하지 않다고 한다.

여행 내내 해산물을 별로 먹어보지 못했는데, 기부 천사 덕분에 크레타에서 달팽이 요리를 탐닉했다.

하양과 파랑의 조화 산토리니. 해마다 덧칠해지는 하얀색과 푸른색 페인트를 배경으로 셔터 소리가 연신 터졌다.

세계에서 가장 큰 해상 칼데라 중 하나를 지닌 산토리니는 크루즈에서 바라본 절벽 위의 가옥군락 모습이 장엄했다. 항공기로 간 사람들은 못 볼 경관이다. 밤 경관도 환상적이다.

지금도 활화산이지만 기원전 17세기에 발생한 화산폭발을 계기로 크레타의 미노스 문명은 쇠퇴하게 되었다고 한다.

해마다 덧칠해지는 하얀색과 푸른색 페인트를 배경으로 셔터 소리와 함께 북적대는 인파는 시간의 압력 속에 일몰을 재촉했다.

밤 9시 반에 출발한 배는 아침 7시가 되어 내륙항에 도착했다.

13일간의 일정은 TV나 유튜브 영상처럼 지적욕구를 채운 관광이었나 아니면 인생의 한 순간을 같이한 여정으로 나를 성장시켰는가?

역사유적 탐방 성격이었기에 현지인의 생생한 삶, 문화와 좌충우돌하는 기회는 가질 수 없었다.

그래도 처음 만난 분들 모두가 환대하고 배려해 주어 성찰과 사유의 물멍 시간 부재를 메워주었다.

기억의 상흔, 잊고 싶은 과거는 파도 속으로 가라앉지 않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면 새로운 내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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