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관이 담은 세상
유만선 서울시립과학관장
한때, 인간의 영혼 혹은 마음이 심장에 깃들어 있다고 믿던 시기가 있었다.
“내 심장을 빼앗아 간 그대여!” “심장이 얼어붙은 냉혈한” “네 심장이 시키는 대로 하렴!”과 같은 문학적 표현에는 당시 사람들의 이러한 생각이 남아있다.
내 마음은 어디에
‘심리학’과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심장’이 아닌 ‘뇌’에서 담겨있음을 알게 되었다.
인공심장을 달고 수년씩 살고 있는 환자들의 경우, 그들이 인공심장을 달기 전과 인격적으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반면, 사고나 질환으로 뇌의 일부 기능이 마비된 환자들의 성격이 바뀐 경우는 자주 보고된다.
다소 슬프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과학계에서는 우리의 영혼을 인식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아가 몸이라는 ‘물질’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고 본다.
좀 더 살펴보면, 우리의 기억·감정·판단을 위해 작동하는 것은 우리 뇌를 구성하는 뇌세포와 그들의 연결구조다.
‘시냅스(synapse)’라고 알려진 뇌세포들 간의 연결로 인해 뇌를 가진 동물들이 외부 환경에 대해 높은 수준의 의사결정 및 반응을 하고 그에 따라 생존에 보다 유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커넥톰(connectome)’이라 불리는 뇌세포 간의 연결구조는 오래 전부터 과학자들의 관심사였다.
예쁜꼬마선충 뇌 지도를 그리다
과학자들이 처음 뇌지도 즉 커넥톰 분석에 쓴 동물은 ‘예쁜꼬마선충’이다.
이 동물은 신경세포 수가 약 300개, 시냅스 수는 약 7,500개로 비교적 적기 때문에 영국의 생물학자 시드니 브레너(Sydney Brenner)가 신경망 분석 대상으로 선택했다.
1986년 완성된 이 동물의 뇌지도를 바탕으로 예쁜꼬마선충의 기본적인 자극과 반응에 대한 모델이 완성되었고, 컴퓨터로 시뮬레이션되거나 빛 센서와 바퀴가 달린 단순한 모양의 로봇에 적용되어 인공적인 프로그래밍 없이도 스스로 동작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2024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세바스찬 승 교수가 이끄는 국제연구팀 플라이와이어(Flywire)가 14만개의 뇌세포, 5,450만개의 시냅스를 갖는 ‘초파리’의 뇌지도를 완성해서 유명한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소개했다.
예쁜꼬마선충에 비해 7,000배가 넘는 시냅스 수를 갖는 뇌 구조를 예쁜꼬마선충 연구결과가 나온지 4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밝혀낸 것이다.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분석된 초파리의 커넥톰을 바탕으로 인지-사고-행동을 표현하는 모델이 만들어졌다.
스위스 로잔공과대학교의 파반 라마디야(Pavan Ramdya) 교수팀이 만든 실제 물리법칙을 따르는 가상 파리 ‘NeuroMechFly’의 몸속에 이 모델이 적용됐다.
가상공간 속에서 주변환경을 인지하고, 사고하여 행동하는 복잡한 생명체가 탄생한 것이다.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초파리는 더운 여름날 그 어딘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파리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앞다리를 비비고, 땅 바닥을 이리저리 기어다니다가 (비록 이 또한 가상일 뿐이지만) 먹이가 감지되면 대롱모양의 입을 뻗어 먹는 동작을 취한다.

뇌···우주 최강 복잡 구조물
인간의 뇌세포는 약 860억 개, 시냅스는 100에서 1,000조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예쁜꼬마선충은 말할 것도 없고 초파리와도 비교가 안 되는, 가히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물이라 불릴 만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또한 ‘셀 수 있는’ 숫자이기 때문에 과학자들에게는 언젠가 도달 가능한 목표라는 것이다. 가상 초파리 프로젝트를 진행한 미국의 신경기술 스타트업, 이온 시스템즈(Eon Systems)의 목표 또한 인간의 뇌지도를 완성하고 이를 모델화하는 것이다.
동물의 뇌에 대한 이런 연구결과로 우리의 마음이 어쩌면 그저 뇌세포들의 연결과 그 안에서의 전기-화학적 신호전달이라는 물리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자연선택을 통해 세대를 거쳐 뇌를 진화시켜 온 인간의 뇌구조를 디지털화하는 것이 진짜 일반 인공지능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한다.
더 나아가 우리 또한 가상세계에 살고 있는 초파리처럼 어떤 초월적 존재에 의해 설계된 시뮬레이터 속 가상의 존재는 아닐까 하는 공상과학 같은 상상도 해본다.
이렇듯 ‘무지의 시대’를 넘어 우리의 마음과 뇌에 대한 연구가 깊어 질수록 인간 존재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오래된 믿음은 흔들리게 될 것이다.
어찌 보면 그 동안 정체되어 온 수천 년 역사의 종교와 인문철학이 새롭게 인류 앞에 서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과학관이 담은 세상’은 서울시립과학관이 직접 과학 관련 이야기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