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수현 지리선생님의 그리스여행4
메세니아 – 올림피아 – 코린트
여행 5일차. 오전에 스파르타 유적을 둘러보고 메세니아를 향해 60km 거리를 달렸다. 우리를 태우고 타이게토스 산맥을 넘어가는 대형버스 승무사의 실력이 대단하다. 왕복 2차선이 대부분인 그리스에서는 고도의 운전기술을 갖추지 않으면 관광버스 운전을 할 수 없다고 가이드가 칭찬한다.
고고유적만 달랑 남아 있는 메세니아는 펠로폰네소스의 숨은 보석이라 할만하다. 기원전 5세기 전후,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폴리스 메세니아는 온 시민이 노예로 전락하는 굴욕을 겪었다. 역사의 처연함을 넘어 전율이 느껴진다. 폭력, 치욕, 연민 등 다양한 감정이 밀려왔다.


10m 높이의 성벽이 9km에 달하고 황제 숭배 신전, 체육관과 스타디움, 아고라와 원형 극장, 아스클레피온(복합치유시설) 등 헬레니즘-로마식 유적이 즐비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멧돼지 요리를 접하기 어렵지만, 아토미산(800m) 중턱의 올리브 나무 그늘 아래 식당의 멧돼지 요리는 모처럼 짜지 않고 담백했다.
여행은 어디로 만큼 누구와
식사 후 1시간 반을 달려 그리스의 유일한 평원 올림피아에 도착했다. 다른 지역보다 식생이 풍성하고 평원이 주는 싱그러움에 기분이 고양된다.

다른 꾸러미 여행과 달리 매번 1시간이 넘는 식사 시간과 중간의 티 브레이크는 함께하는 사람들과 화학적 결합을 도모하는 기회가 되었다. 가치관과 세계관이 유사한 사람이 많아 보였다.
여행은 어디로 가느냐만큼 누구와 가느냐도 중요하다. 이날 밤 정형외과 의사와 둘이 숙소를 빠져나와 올림피아 시내 거리를 걸으니 시간의 압력은 더 느슨해졌다.
맥주를 곁들이며 늦게까지 담소를 즐기는 현지인 모습을 보면서 알고리즘대로 살지 말고 주체적인 일상을 만들자고 설핏 다짐한다. 우선 유튜브 멀리하기.
6일(일) 아침 일찍,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제우스 신전과 올림픽 성화가 채화되는 헤라 신전으로 총총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만큼 많은 인파가 북적인다.
4년에 1년만큼은, 끊이지 않던 도시 국가간 전쟁을 중지하고 평화를 맛보자고 한 올림픽 제전이다.
나에게도 월계관을 다오
몇 달 며칠을 걸어 이곳에 왔던 선수들의 기상. 오 그대들이여! 당시(기원전 776) 선수처럼 나신으로는 아니지만, 직접 운동장을 달려 보았다. 나에게도 월계관을···
약물복용이나 선수 매수 등에 가담한 불명예스러운 선수들의 이름을 새겨놓은 비석이 눈에 띈다. 올림픽은 승부보다 신 앞에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제전의 성격이 강했기에 페어플레이가 더 중요했다.
올림피아 박물관은 전시물이 엄청 많고 화려했다. 시간이 너무 짧다.

코린토스로 가는 도중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순교한 것으로 전승되는 파트라스의 성 안드레아 교회(아기오스 안드레아 대성당)를 잠시 들르는 행운을 누렸다. 촬영에 바쁜 일행 옆에서 잠시 기도에 잠겼다.
죽기 전에 이런 곳에 올 수 있다니
코린트에서 생선요리로 점심을 맛나게 즐긴 후, 고대 코린트의 고고박물관과 유적지 터에 갔다. 파괴되고 남은 유적유물이 별로 없다. 가이드의 설명이 없다면 별 감흥이 생길 것 같지 않다.
남성적인 도리아식 기둥의 아폴론 신전과 매우 여성적인 코린트식 기둥의 옥타비아 신전 앞에는 사도바울이 활동했다고 전해지는 아고라 광장 터가 남아 있다.

사도바울은 그가 쓴 신약성서 여러 편지 중 가장 긴 호흡으로 고린도 교회 신자의 타락과 불건전한 신앙행태를 질타하며, 자기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눈물 어린 진심을 토로했다.
아크로코린트에 오르니 코린토스 시 서편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야~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죽기 전에 이곳에 올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5성급이라는 호텔 앞에 정박해 있는 배에 저커버그가 와 있다고 한다. 코린토인 디오게네스가 이 지역에 온 알렉산더 대왕에게 말했다. ‘햇볕을 가리지 말고 비켜서시오. 그게 나를 돕는 거요.’ 바다 낙조가 이렇게 환상적인데 저커버그가 무슨 대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