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9일 월요일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

책人감과 함께하는 책in책

조승리 | 세미콜론 | 2025년 4월

요즘 책인감에서는 조승리 작가의 책들을 많이 추천한다. 올해 1월, 그녀의 첫 책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로부터 몇 달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책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을 만났다.

조승리는 15세 무렵 시력을 잃기 시작해 20대에 전맹이 됐고 시각장애인 안마사로 살아가며 자신만의 언어로 삶을 기록해 왔다.

첫 책에서는 솔직하고 냉소적인 문체로 당당하고 객관적인 삶의 태도를 보여주었고, 나에게는 그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첫 책에서 소개된 타이베이 여행기를 특히 인상 깊게 읽었다.

이번 신작에는 말레이시아, 베트남, 일본, 두만강·백두산, 필리핀 등 다양한 해외여행의 경험이 실려 있다.

시각장애를 지닌 채 낯선 도시들을 여행한다는 건 우리가 쉽게 상상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감내하는 일이지만, 작가는 다른 감각과 방식으로 충분히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글로 증명해 낸다.

그녀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미처 경험하지 못한 여행의 장면들과 마주하게 된다. 때로는 그녀의 억척스러운 생존 방식이나, 나의 일상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삶의 리듬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조승리의 문체는 지나치게 감정에 기대지 않으며, 객관적이면서도 담백한 시선으로 삶의 단면을 포착해 내서 좋다.

이 책은 시각장애라는 조건을 내세운 극복 서사가 아니다. 조승리라는 한 사람이 자신의 조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위에서 어떤 관찰을 이어가며, 그 경험들을 어떻게 말로 되살리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녀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을 비롯해 안마사로서 맞이한 손님, 그리고 동료들의 삶을 따뜻하게 포착해 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기억을 회상하기도 하고 불의를 향한 단호한 태도와 플라멩코를 배우는 열정까지 삶의 다채로운 장면들을 독자 앞에 펼쳐 보인다.

이 책은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태도, 그리고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했던 일상의 감각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다.

‘책인책’은 우리동네 책방 이철재 대표가 직접 소개하는 추천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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